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급증에 ‘조건부 면허제’ 도입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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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등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 발표
교통사고 사망자 역대 최저, 고령자 사고는 증가 추세
야간·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 제한 등 운전범위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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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한다. 65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 제한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조치인 만큼 적성검사 현실화, 대안 교통수단 마련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비중 29.2%, 단독사고 치사율 높아

20일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보행자·고령자 안전, 화물차·이륜차 안전관리 강화를 골자로 하는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계획에는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제 도입’이 세부과제로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 2022년 4월부터 올해 12월까지 총 36억원을 들여 ‘고령자 조건부 면허제 도입 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연구과제는 대상별 조건 부여 기준 마련, 조건에 따른 운전 능력 평가시스템 개발로 현재 서울대 컨소시엄이 수행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말 해당 연구 용역이 종료되면 이를 토대로 법 개정 등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2,55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달성했다. 전년 대비 6.7% 감소한 수치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1991년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체 사망자 수가 감소하는 데 반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고령 운전자로 인한 사망자 수는 745명으로 전체의 사망자의 29.2%에 달했다. 특히 고령 운전자의 경우 운전자의 과실이 높은 차량 단독사고 치사율이 전체 교통사고(25.5%) 대비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정부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고령자 등 운전자의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우선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 능력 평가를 실시할 방침이다. ‘고령자 조건부 면허제’와 관련해서는 운전 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야간·고속도 운전 금지, 속도 제한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허용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하는 ‘운전면허증 반납 제도’도 지속해서 추진하기로 했다.

교통약자 이동권 침해 논란에 ‘고위험군 대상’으로 정정

이날 교통사고 감소 대책이 발표되자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제와 관련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65세가 90대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100세 시대에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것인가”, “버스도, 택시도 안 들어오는 시골 어르신들은 무엇을 타고 다녀야 하나”, “택시·트럭·덤프 등 생계형 고령 운전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등 댓글 등을 통해 거세게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고령자의 인지 능력과 운전 능력이 천차만별인 만큼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 운전권을 제한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고령 운전자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한 전 위원장은 해당 글에서 “불가피하게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때는 최소한도 내에서, 정교해야 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오늘 보도에 나온 고연령 시민들에 대한 운전면허 제한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대책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며 발표 내용을 수정했다. 21일 경찰청은 참고 자료를 내고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참고 자료에서 경찰청은 “조건부 운전면허는 의료적·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말까지 고위험 운전자의 운전 능력 평가 방법과 조건 부여 등에 관한 기술 개발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내년부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충분한 여론 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세부 검토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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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 운전면허증 반납 제도/사진=한국도로교통공단

고령 운전자 특성 고려한 실효성 있는 제도 도입 필요

이같은 논란의 핵심은 결국 제도의 실효성이다. 현재도 고령 운전자와 관련한 정책이 운용되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례로 ‘운전면허증 반납 제도’의 경우 실제 고령자의 면허 반납률은 2% 안팎으로 저조한 실적이다. 운전면허증 반납과 함께 고령 운전자 적성검사도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다. 현재 65~75세 미만은 5년, 75세 이상은 3년마다 적성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적성검사가 시력 측정 같은 형식적인 검사에 그치는 데다 실제 주행 실력이나 기능 실력을 검증하지 않아 운전자의 대응 능력을 평가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선진국의 고령 운전자 관련 정책을 참고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실제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미국, 일본 등은 고령자 운전을 규제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미국은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운전 거리, 시간, 속도 등을 구체적으로 제한한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한다. 주마다 운영 방식이 다른데, 대부분의 주에서 고령 운전자에 대한 의료 검진과 함께 필요한 경우 도로 주행 시험을 다시 치르도록 하고 있다.

독일과 호주 일부 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야간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게는 주간 운전만 허용하고, 장거리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게는 자택에서 반경 몇㎞ 이내에서만 운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지난 2017년 고령 운전자의 사고 방지 기능을 갖춘 ‘서포카S’를 도입하고 보조금을 통해 차량 교체를 지원하고 있다. ‘서포카S’는 센서가 장애물을 감지해 충돌이 예상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자동 제동 장치와 가속 페달을 밟아도 급발진하지 않도록 연료를 차단하는 억제 장치를 갖추고 있어 실제 사고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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